운명보다 가까운 만남
현지
예술 작품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나는 작가나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작품을 통해 작품 속 인물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 있나요? 저는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사춘기〉(1894~1895)를 보며 제 자신을 비추어 보았던 순간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본 순간은 필기구와 책들이 어질러져 있는 책상 위, 방구석에 펼쳐진, 이은기·김미정의 『서양미술사』 436쪽이었습니다. 분명 낭만적인 곳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특별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제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뭉크의 〈사춘기〉 속 어린 소녀는 딱딱해 보이는 침대에 어딘가 불편한 듯 경직된 자세로 걸터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웅크린 채 양손을 포개며 몸을 슬며시 가리고 있습니다. 그 뒤로 소녀의 오른편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기이한 모양으로 몸에서 빠져나온 영혼의 형태 같습니다. 마치 소녀의 몸에서 삐져나온 두려운 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또한 거친 붓 터치와 중후한 느낌의 색감은 사춘기를 맞아 여러 변화를 마주친 소녀의 불안한 마음을 한층 두껍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시선을 붙잡은 것은 소녀의 눈과 미묘한 표정이었습니다. 소녀의 눈동자 속에는 걱정, 당황, 다부진 다짐 그리고 싱숭생숭함이 한대 뒤엉켜있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새로운 출발선에 섰을 때 제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과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당황, 그럼에도 끝까지 해내 보겠다는 다부진 결심과 어쨌든 새로운 시작이 가져다주는 두근거림과 어수선한 마음을 소녀의 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위해 아무 기대 없이 펼친 책 속의 작품에 제가 빠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 속 SNS, 책 등에서 쉽게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술작품에 나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순간도 항상 열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감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마음속 깊이 묻혀있는 취향과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감상에는 답이나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작품은 내가 공감할 수 있고, 작품과 나를 연결하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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