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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화초이고 개구리이다

 

우리는 화초이고 개구리이다

수연

2020년 여름, 엄마는 직장 동료한테 받았다며 ‘크루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열대 식물을 가져왔다. 엄마는 바쁜 직장 생활에도 크루시아에게 물 주기를 잊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크루시아는 모두가 집을 비웠을 때의 한기를 견디지 못했다. 여름 방학 때 크루시아를 처음 보고 겨울 방학을 맞이해 다시 얼마간 본가에 다녀온 나는 파릇하던 식물이 반년 만에 시들어가던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좁은 화분에 겨우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자리 잡은 식물은 인간의 미적 관상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손수 길러진다. 식물은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지만, 이는 화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의 관리와 제약 아래 이루어진다. 화분 속 식물에서 현대 사회의 그늘 아래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 체제의 존속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하며, 사회나 특정 집단의 규범에 따라 규격화되기도 한다. 화분에 심겨 길러지는 식물과 사회의 흐름 속에 힘없이 내던져진 인간. 

현대인과 식물의 닮은꼴을 인지한 계기는 장성은의 flowerpot〉 연작이었다. 연작은 2009년에 제작된 4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작품의 크기는 45X33.6cm로 동일하며, 모두 보존성을 높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Archival Pigment Print)로 인쇄되었다. 동일한 크기와 인쇄 기법으로 제작된 4장의 사진에는 엇비슷한 광경이 포착되어 있다. 먼저 녹색 스타킹을 신은 사람이 다리를 꼬고 꽃문양과 꽈배기 패턴이 새겨진 흰 항아리 안에 서 있다. 전형적으로 관상용 식물의 화분으로 쓰이는 흰 항아리와 녹색의 다리는 은연중 ‘화분 속 식물’을 연상시킨다. 사진마다 다리를 꼰 자세나 스타킹의 색은 제각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알기 힘들다. 게다가 화분은 방향만 살짝 틀었을 뿐 그 성질이나 모습 자체에서 변화를 찾을 수 없다.


1) 사회 : 구성원 = 관리자 : 식물
현대인은 주체적인 인격체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자 노력한다. 이때 ‘주체(主體)’는 동작과 상태의 ‘主(주인 주)’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른바 “주체적인 삶”이란 ‘사회구조의 규범 속에서’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flowerpot〉 연작에서 직관적으로 포착되는 ‘인간’은 사회구조의 규범 속에서 획일화되어 가는 구성원을 뜻한다. 이때 녹색 스타킹을 통해 연상되는 ‘식물’의 모습은 인간의 관리와 보호 아래 생을 꾸려나가는 식물을 뜻하기도 하는데, 〈flowerpot〉은 전자와 후자가 교차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둘의 관계를 고민하도록 한다. 인간이었다가도 식물처럼 보이는 흐릿한 교차 지점에서, 소속된 집단의 논리에 쉽게 순응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대중심리가 만연해 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 인간은 타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므로 사회 체제를 따르려 애쓴다. 이러한 심리는 사회가 규정하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자칫 ‘일탈’로 치부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고 모두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외부적 힘에 옭아매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를 본능적으로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¹라고 하였다. 이는 인간에게는 다수와 구분되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은 심리가 내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사회의 흐름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하고 사회 규범에 복종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국가에 종속된 인간은 사회 규범에 따라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학교나 종교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집단에 소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은 평생을 규범의 제약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나 집단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학(Politica)』에서 “국가를 벗어난 고립된 개인은 짐승이 아니라면 신일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인간 사회에서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안전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종속이 곧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보장하지는 않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과도한 제재는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2) 힘의 구조 : 사회 > 현대인 > 식물
온라인으로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화초는, 환경을 가꾸는 데 많이 사용되나 무관심과 이해 부족, 부주의 속에서 금세 말라 죽기도 한다. 어딜 가나 공기청정기 하나쯤은 있는 도시에서 식물의 존재 의미는 그저 회색빛 도시에 초록빛을 더하기 위함에 그치는 것 같다.

〈flowerpot〉에서 인간이자 식물이 화분에 ‘심겨’ 있다는 점은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더 우월한 세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식물의 입장에서 관리자는 인간이고, 화분 안에 들어간 모델의 입장에서 관리자는 작가이다. 그러나 작가 역시 국가에 종속된 한 개인으로서 사회 규범이 그를 제약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사이의 유사점과 위계 관계는, 식물과 현대인이 누군가의 관리와 사회 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존재한다는 하나의 사실에서 출발한다.

즉, ‘사회와 사회 구성원’의 관계는 ‘관리자와 식물’의 관계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과 식물은 피지배자라는 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고, 사회 구성원과 관리자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도식화하면 ‘사회 : 구성원 = 관리자 : 식물’이 된다. 이때 위계관계에 따른 권력 행사 구조는 ‘사회 → 현대인(구성원이자 관리자) → 식물’과 같은 방향이다. 식물은 현대인을 대변하는 존재이면서도 현대인의 욕망을 표출하고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과 강요를 전이시키는 대상이다.


장성은의 〈flowerpot〉 연작에 관한 관심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현대인의 욕망을 대변하는 대상으로써의 화분 속 식물을 조명하고, 사회에서 계속해서 소외되는 현대인의 모습과 그들의 개성을 잃게 하는 사회에 접근할 수 있었다. 재차 말하지만, 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없는 국가는 무의미하고, 국민의 복지와 안전을 위해서도 국가는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flowerpot〉에서 화분의 존재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굴레에 대한 일종의 인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우리의 판단 기준은 더욱 모호해진다. 현대인은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조직이나 집단에 소속되어 사회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규범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그리고 사회 구조와 규범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의무적으로 받는 교육과 스스로 선택한 종교가 우리의 삶을 통제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온실 속의 화초이자, 우물 안 개구리이자, 화분 안에서 관리받는 식물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통제는 외부의 일방적인 강압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선택적으로 자신을 보이지 않는 틀에 가둠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구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것인지에 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장성은의 〈flowerpot〉 연작은 인간의 관리 아래 통제를 받으며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과 성질을 인간과 식물의 위계관계로 상정했다. 이를 현대인의 대중심리에 기반하여 유사점을 밝혔다. 그렇지만 선택적이거나 혹은 강제적인 요소가 사회나 개인에게 있어서 필요악인지 절대선인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이 더 나은지에 관하여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크루시아로 살아가고 있는가?

                      
각주
¹ 황주환,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생각의나무, 2011): p.233.
참고자료
1. 홍순엽, 『화분에 심겨진 식물을 통해 본 현대인의 특징 표현 연구 :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서울: 국민대학교 미술학과 회화전공 석사학위논문, 2012.
2. 황주환,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서울: 생각의나무,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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