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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1의 게시물 표시

3. 의자가 쏘아올린 작은 별

  의자가 쏘아올린 작은 별 현지 가보고 싶었던 음식점 근처에 우연히 ‘아마도 예술공간’이 있었다. 때마침  전시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 이 열리고 있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장에 방문했다. 여기도 작품이 있을지 의문을 자아내는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니, 전시실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하의 눅눅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무서운 느낌을 주었으나, 동시에 비현실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약간의 공포를 누르고 전시실 밖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가니, 조명이 붙어있는 의자와 감자칩 한 바구니를 마주하게 되었다. 의자의 손잡이와 뼈대에는 나무토막이 덧대어져 있었으며, 그 위로 작은 스탠드 같은 조명이 세워져 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조명 아래로는 작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에 감차칩 한 바구니가 있었다. 의자의 맞은편 바닥에는 은색 별이 붙어있었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앉아서 관람하는 작품입니다'라는 문구는 ‘앉으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공간을 채운 조명은 불이 꺼진 방을 홀로 밝히는 스탠드를 떠올리게 했다. 빛을 받은 의자는 몇 가지 장치가 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골드버그 장치(생김새나 작동원리는 아주 복잡하고 거창하지만 아주 간단한 일을 하는 기계)를 떠올리게 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흔히 보던 녹색 우유 상자가 의자 발 받침대로 설치되어 있었다. 우유 상자를 비집고 나온 실타래들은 마치 딱딱한 플라스틱이 포근한 발 받침대가 된 듯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커다란 은색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깜깜해졌다.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나는 “악!”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나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지이이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있던 별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

2. 우리는 화초이고 개구리이다

  우리는 화초이고 개구리이다 수연 2020년 여름, 엄마는 직장 동료한테 받았다며 ‘크루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열대 식물을 가져왔다. 엄마는 바쁜 직장 생활에도 크루시아에게 물 주기를 잊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크루시아는 모두가 집을 비웠을 때의 한기를 견디지 못했다. 여름 방학 때 크루시아를 처음 보고 겨울 방학을 맞이해 다시 얼마간 본가에 다녀온 나는 파릇하던 식물이 반년 만에 시들어가던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좁은 화분에 겨우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자리 잡은 식물은 인간의 미적 관상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손수 길러진다. 식물은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지만, 이는 화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의 관리와 제약 아래 이루어진다. 화분 속 식물에서 현대 사회의 그늘 아래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개인으로서 인간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 체제의 존속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하며, 사회나 특정 집단의 규범에 따라 규격화되기도 한다.  화분에 심겨 길러지는 식물과 사회의 흐름 속에 힘없이 내던져진 인간.  현대인과 식물의 닮은꼴을 인지한 계기는  장성은의  〈 flowerpot〉 연작 이었다. 연작은 2009년에 제작된 4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작품의 크기는 45X33.6cm로 동일하며, 모두 보존성을 높인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Archival Pigment Print)로 인쇄되었다. 동일한 크기와 인쇄 기법으로 제작된 4장의 사진에는 엇비슷한 광경이 포착되어 있다. 먼저 녹색 스타킹을 신은 사람이 다리를 꼬고 꽃문양과 꽈배기 패턴이 새겨진 흰 항아리 안에 서 있다. 전형적으로 관상용 식물의 화분으로 쓰이는 흰 항아리와 녹색의 다리는 은연중 ‘화분 속 식물’을 연상시킨다. 사진마다 다리를 꼰 자세나 스타킹의 색은 제각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알기 힘들다. 게다가 화분은 방향만 살짝 틀었을 뿐 그 성질이나 모습 자체에서 변화를 찾을 수 없다. 1) ...

1. 프로젝트 코드: 되기

프로젝트 코드: 되기 강리 붉은 글씨로 날짜를 새기어 넣는 구식 필름 카메라가 간신히 포착한 순간들이 있다. 가장 먼저 길가에 털썩 주저앉은 히스패닉 여성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굽은 등 뒤로 풍성한 컬을 자랑하는 가발이 흐른다. 네온 색상의 탑이 그을린 피부를 강조하고, 볼드한 귀걸이와 목걸이가 시선을 모아 독특한 화장법을 가리킨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런데 화려하게 꾸미고 여름볕을 활보하던 그가 짧은 머리에 투박한 안경을 하고서 파란 벨벳 소파에 누워있다, 여자를 안고. 나는 재빨리 다음 장으로 향했다. 바지를 끌어내리는 여자를 따라가던 노골적인 손이, 이번에는 폴을 잡고 있다. 그는 이제 클럽에서 레오파드 비키니를 입고 섹슈얼한 춤을 춘다.  우연한 순간을 낚아챈 듯한 이미지 속에서 그는  히스패닉 이 되었다가,  부치(Butch) 가 되었다가,  스트리퍼 가 되기도 한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되었고, 될 수 있다. 이처럼 니키 리(Nikki S. Lee)는  〈프로젝트(Project)〉(1997-2001) 연작 에서 스냅사진과 퍼포먼스를 이용하여 어떤 무리의 근방역으로 들어간다. 〈히스패닉 프로젝트〉에서 니키 리는 컬러 렌즈를 끼고 피부색을 그을리고 머리를 연장하고 스페니쉬 할렘에서 구입한 옷과 화장품을 사용하여 외양을 변형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열린 푸에르토리칸 데이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할렘의 사람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정황에 접근했다. 히스패닉 코드에 접속하는 니키 리의 이러한 태도는, 히스패닉 양식을 모방한다기보다, ‘히스패닉’이라고 명명된 리듬에 차이를 부여하며 반복하는 리토르넬로(ritornello)¹를 연주하는 일에 가깝다. 리토르넬로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공존할 수 있는 ‘사이(entre)’를 생성하고, 여기에서 니키 리는 비로소 히스패닉-되기(devenir)²를 통과한다. 이때 히스패닉-되기가 벌어지는 공간은 니키 리의 ‘몸’이다. 〈프로젝트〉에서 니...